만수르의 맨시티는 어떤 팀일까? (구단주,감독,창단,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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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의 맨시티는 어떤 팀일까? (구단주,감독,창단,스폰서)

by NAM BLOG 2022. 3. 1.

만수르의 맨시티는 어떤 팀일까? (구단주,감독,선수명단,스폰서)

 


정식 명칭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애칭
시티즌 (The Citizens)
블루스 (Blues)
블루문 (Blue Moon)
약칭
MCI

창단
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1887년 (아드윅 AFC)
1894년 4월 16일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Premier League)
연고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Manchester)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
(55,017명 수용)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체스터 더비
리버풀 FC

구단주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아랍에미리트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 (Mansour bin Zayed Al Nahyan)

회장
아랍에미리트 칼둔 알 무바라크 (Khaldoon Al Mubarak)
사장
스페인 페란 소리아노 (Ferran Soriano)
단장
스페인 치키 베히리스타인 (Txiki Begiristain)
감독
스페인기 펩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주장
브라질 페르난지뉴 (Fernandinho)
부주장
독일 일카이 귄도안 (İlkay Gündoğan)
영구결번
23 마르크비비앙 푀 (Marc-Vivien Foé)
클럽 앰버서더
잉글랜드 국기 마이크 서머비 (Mike Summerbee)
중국 국기 쑨지하이 (Sūn Jìhǎi)

출처 - manchester city

 

맨체스터시티의 우승기록은?


프리미어 리그 (1부)
(7회)
1936-37, 1967-68, 2011-12, 2013-14, 2017-18, 2018-19, 2020-21

EFL 챔피언십 (2부)
(7회 / 최다 우승)
1898-99, 1902-03, 1909-10, 1927-28, 1946-47, 1965-66, 2001-02

FA컵
(6회)
1903-04, 1933-34, 1955-56, 1968-69, 2010-11, 2018-19

EFL컵
(8회)
1969-70, 1975-76, 2013-14, 2015-16, 2017-18, 2018-19, 2019-20, 2020-21

FA 커뮤니티 실드
(6회)
1937, 1968, 1972, 2012, 2018, 2019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69-70

출처 - manchester city

맨시티의 현재까지의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잉글랜드 국기 잭 그릴리쉬 (Jack Grealish)
(2021년, From 아스톤 빌라 FC, 1억 £)

최고 이적료 방출
스페인 국기 페란 토레스 (Ferran Torres)
(2021년, To FC 바르셀로나, 4,630만 £

최다 출장
잉글랜드 국기 앨런 오크스 (Alan Oakes) - 682경기 (1959~1976)
최다 득점
아르헨티나 국기 세르히오 아궤로 (Sergio Agüero) - 260골 (2011~2021)

리그 득점왕
(4회)
잉글랜드 국기 프랭크 로버츠 (1924-25)
잉글랜드 국기 프란시스 리 (1971-72)
아르헨티나 국기 카를로스 테베스 (2010-11)
아르헨티나 국기 세르히오 아궤로 (2014-15)

 

맨시티의 팀 탄생 개요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맨체스터. 홈 구장은 에티하드 스타디움.

1880년 세인트 마크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여 1887년 아드윅 AFC로 바꿨다가 1894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만수르 자본의 유입 후 2010년대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고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뽐내며 이젠 구단의 최종 목표에 도전하는 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강팀이자 빅클럽이 되었다.

구단주는 아랍 에미리트의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다. 법적으로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ADUG)이 시티 풋볼 그룹의 대주주가 되고 시티 풋볼 그룹과 그 회장인 칼둔 알 무바라크가 그를 대신하여 구단을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만수르가 투자청을 세운 이유는 맨시티를 인수하기 위해서이고 그 예하의 시티 풋볼 그룹은 맨시티 인수 이후 전 세계의 다른 구단들(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 등)과 함께 지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경영 구조일 뿐이므로 최종 결재권자는 여전히 만수르이다.

출처 - manchester city

 

맨시티의 창단과 리즈시절?


1880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고튼 서부에 위치한 세인트 마크스 교회 (St. Mark's Church)의 교인들이 다분히 인도적인 목적으로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알려질 축구 클럽을 창단했다. 당시 많은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맨체스터 동부, 특히 고튼에 만연해있었는데 현지인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이것을 개선하고 사회적 병폐를 줄이라는 아서 코넬 (Arthur Connell) 목사의 독려에 따라 교회 관리인인 윌리엄 비스토우 (William Beastow)와 토마스 굿비히어 (Thomas Goodbehere), 그리고 아서 코넬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 (Anna Connell)이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St. Mark's West Gorton) 라는 교회 축구 팀을 창단한 것이다. 특히 안나 코넬은 19세기에 창단된 프로 축구 팀 가운데, 창단 멤버 중에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안나 코넬이 창단에 큰 기여를 했는데 원래는 크리켓이나 럭비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지방 음주 노숙자라든지 여러 사회문제가 된 알콜중독자를 위한 스포츠로 두 종목은 맞지 않는다며 축구팀을 만들자고 건의한 게 그녀였다고 한다.(2016년 9월호 베스트 일레븐 지 출처)

1884년,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되지만 불과 한 시즌 뒤에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분리되었다. 1887년에 연고지를 맨체스터 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된다. 1889년에는 하이드 로드 근처의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광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고, 아드윅 AFC와 뉴턴 히스(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처 - manchester city


1892년 잉글랜드 축구 2부 리그가 설립되었고 아드윅 AFC가 창립 멤버로 참가, 1894년에는 팀 이름을 맨체스터 시티 FC로 바꾸기도 하였으나 그 시절 리그는 매우 열악했고 지방의 중소 구단으로 자금 문제로 2부 리그로 내려갔다가 1898-99시즌에서야 드디어 1부 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시 2시즌도 안 가 강등당했다. 그러다가 1시즌 만에 승격과 같이 다음 해인 1903-04시즌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FA컵 우승과 같이 리그 2위(우승은 더 웬즈데이가 2연속 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는가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거치며 중소 구단으로서 지내야 했다.(그 와중에 1923년 홈구장 하이드 로드가 불에 타버려서 메인 로드로 경기장을 옮기기도했다.)

1925-26시즌에는 감독 없이 FA컵 우승을 하기도 하고, 맨유 원정에서 6대1로 이기기도 했지만 강등당한다(...). 1928년에는 최고의 서포터즈를 가진 클럽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34년 FA컵 우승, 라이벌인 맨유가 첫 리그 우승(1907-08시즌)을 거둔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인 1936-37시즌에서야 맨시티도 첫 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하지만 37-38시즌, 리그 42경기에서 80골이나 넣는 공격력을 보유하고도 77실점이나 허용하는(...)수비진 탓에 강등당했다. 결국 맨시티는 지금까지 다음 시즌에 강등된 유일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실점보다 높은 득점(+3)을 기록하고도 강등된 유일한 팀으로 남는다. 그래서 1951년에 전쟁포로 독일인 골키퍼 버르트 트라우트만을 전격 영입하면서 타팀의 어그로와 수비를 강화하면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승격과 강등을 거치면서 1955년에 FA컵 결승전에서 뉴캐슬에게 패해 우승컵을 내주지만, 1년 후 다시 결승에 진출해 우승한다. 1958년 뮌헨 참사에서 맨시티의 골키퍼였으며 기자로 활동하였던 프랭크 스위프트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출처 - manchester city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 선택한 이유는?


사실 만수르는 왜 굳이 맨시티를 구매했는가?라는 의문은 맨시티가 만수르에게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앉지 못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그리고 에버튼 FC 등의 팀의 팬들, 그리고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제기된 의문이다. 겉으로 보면 사실 그당시의 맨시티는 선덜랜드나 풀럼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특히 대부분의 팬들이 빅클럽의 팬이고 중위권 이하의 팀과 리그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만수르가 맨시티를 구원 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터운 팬층 - 맨시티는 성적에 비해서도 팬이 특히 많은 편인 팀이었다. 3부리그에서도 평균 관중이 3만 명에 육박했다는 건 맨시티 팬들이 구호로도 쓸 만큼 자랑스러워 하는 사실이고, 탁신 인수 전에도 맨시티 홈구장의 평균 관중은 사실 우승 이후의 평균 관중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조건은 사실 기본조건으로 몇 년 전 만수르가 아스날 FC를 사려다 실패한 이후로 만수르와 칼둔은 빅클럽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팬층이 두터운 클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기정사실 수준의 설이 있다. 당시와 현재 거론되던 클럽인 뉴캐슬, 에버턴, 토트넘 등(이 셋이 가장 가까웠던 팀이다)이 모두 만족하는 조건이다. 아스톤 빌라 FC도 팬층이 두터운 편이나 당시 이미 러너에게 인수된 이후였다.

·새로 증축된 큰+확장가능한 홈 구장 - 당시 맨시티는 2002년에 맨체스터가 영연방 경기대회를 개최하며 지은 4만 5천석 규모의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가지고 있었고, 낡은 구장을 가진 에버튼, 확장이나 이전이 어려워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토트넘에 비해 맨시티가 확실한 강점으로 쓸 수 있었던 조건이다. 구단주가 올드 트래포드를 뺨치는 8만 석 이상 경기장으로 확장될 예정이란 말도 있지만, 우선은 55,097석 규모로 증축했다. 올드 트래포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런던 스타디움 다음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5번째 규모 경기장이다.

·맨체스터의 규모, 발전 가능성 -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제2/3의 도시/광역권으로 버밍엄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기반시설 또한 좋다. 또한, 경기장 근처에 개발할 만한 땅이 많은 조건이었고 맨체스터 동북쪽에 개발로 자본이 들어온다는 말 역시 많았다. 뉴캐슬과 비교하면 확실한 강점이고, 쇠퇴한 지 오래된 도시인 리버풀에 연고지를 둔 에버튼에 비해서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토트넘은 런던팀이지만 주변 환경이 좋단 평가는 못 받고, 또한 런던에 팀이 워낙 많아 팬층이 갈리기도 쉽다.

출처 - manchester city

맨시티 팬인 유명인들은 누구?


이 팀의 유명인 팬으로는 밴드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가 가장 유명하다. 아예 이들은 3집 Be Here Now의 성공으로 떼돈을 벌게 되자 가장 먼저 할 일로 맨시티를 인수하는 것을 진지하게 의논했을 정도.

전설적인 록 밴드 더 스미스의 기타리스트 자니 마
티머시 돌턴
알란 릭맨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LA 에인절스의 투수 노아 신더가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인 이안 커티스
더 폴의 마크 E. 스미스, 영국의 유명 복싱 선수 리키 해튼
라이언에어의 사장 마이클 오리어리
가수 선미
피파 온라인 4 BJ 두치와뿌꾸(인터넷 방송인)
피파 온라인 4 프로게이머 원창연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케리아
강은비
곽튜브
국악소녀 송소희
하이라이트 레코즈 소속 여성 래퍼 저드

출처 - manchester city

 

맨시티의 여담


·만수르에게 인수되기 이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에 비해 다소 묻혀있던 감도 있지만, 영국 현지에서는 예전부터 팬층이 두터운 팀이다. 특히 1934년 스토크 시티 FC와의 FA컵 경기에서의 관중 수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홈 관중 수 최고 기록인 84,569명이었으며 3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조차 리그 평균 관중 수가 8,000여명일 때 약 30,000명 정도 기록한 것은 맨시티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이다.

·오아시스의 맨시티 사랑은 축구계에서도 유명한 편. 노엘 갤러거는 만수르 인수 이전에는 언젠가 벌어둔 돈으로 자신이 구단주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현재는 구단 사장이랑 같이 식사하는 사이(...)이다. 보컬이자 프런트맨인 그의 동생 리암 갤러거는 아예 라이브를 할 때 맨체스터 시티 티셔츠를 입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기로 알려진 노엘은 방한했을때 인터뷰에서 에릭 남에게 "한국에서 많이 듣게 될 질문을 예습하겠다."면서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묻자 "저런 사람 모른다"라고 대답. 에릭 남이 웃으며 "정말 모르냐"라고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갤러거는 "몰라 몰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팀에 이상할 정도로 대머리 또는 빡빡이 선수가 많다. 탈모에 걸린 레전드가 많은 라이벌 팀과 달리 이쪽은 아예 빡빡이가 팀 컬러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 편. 리버풀의 예전 애칭인 빡빡풀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당장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2018-19 시즌 주장이었던 뱅상 콤파니, 2019-20 시즌 주장인 다비드 실바, 골키퍼인 윌리 카바예로부터 시작해서 야야 투레, 라힘 스털링, 가브리에우 제주스, 엘리아킴 망갈라, 페르난지뉴, 파블로 사발레타, 페르난두 헤제스, 파비안 델프, 바카리 사냐, 애런 무이 등등 최소 맨시티에 있는 동안 한번 이상 빡빡이였다. 오죽하면 머리를 밀어버린 선수를 근본컷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데,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이후에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으며 특히 2017-18 시즌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다비드 실바가 머리를 밀어버린 이후에는 펩이 빡빡이를 강요한게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을 정도였다. 큰 관계는 없겠지만, 실제로 맨시티의 장발이나 금발 선수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19-20 시즌에는 에데르송까지 안 그래도 길지는 않던 머리를 밀었다.

출처 - manchester city


·2017-18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시티와 웨스트햄의 경기가 끝나고 SBS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기획하며 역대급 선곡을 했다. 맨시티가 이때 EPL에서 무패행진을 하고 있을 당시였는데 웨스트햄의 경기에서 전반 44분에 빡빡이 선수인 안젤로 오그본나가 골을 넣고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후반 11분만에 니콜라스 오타멘디가 동점골을 넣고, 후반 37분 쯤에서 빡빡이 다비드 실바가 역전골을 넣어 맨시티가 승리한다. 결과적으로 맨시티의 빡빡이 선수진들의 하드캐리로 인하여 무패행진을 계속하게 된 스토리다.

·2019-20 시즌에도 이런 기믹은 이어졌는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카일 워커가 머리를 밀고 나오더니 맹활약을 하기 시작했고, 새로 합류한 신성 로드리를 본 과르디올라는 “그는 귀고리도 하지 않고 문신 하나 없다. 헤어스타일 또한 짧고 단정하다. 축구를 위한 바람직한 자세가 되어있다”라고 극찬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으로 들어온 이후 대부분의 영입한 선수들이 첫시즌은 부진, 그 다음 시즌은 활약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가브리에우 제주스와 리로이 자네, 베르나르두 실바가 영입 첫 시즌에는 경기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않다가 두 번째 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거나,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인지 2018-19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리야드 마레즈가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마레즈 역시 2번째 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에므리크 라포르트처럼 첫 시즌부터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뱅자맹 멘디와 같이 꾸준히 부진한 경우도 존재한다.

출처 - manchester city

 


·공식적인 라이벌은 맨유 하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시티즌들이 느끼는 맨시티의 최대 라이벌은 리버풀 FC이다. 2013-14 시즌 리그 우승 경쟁을 통해 처음 대립구도가 생겼고 2015-16 시즌엔 리그컵에서도 라이벌리가 생기긴 했지만, 이 경쟁 구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리버풀의 전력이 상승해 리그 우승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 2016-17시즌부터다. 물론 맨유에 대한 라이벌리가 크게 약해진건 아니라서 후벵 디아스 영입 후 디아스에 챈트에서 깨알같이 맨유를 디스하는 가사를 넣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올라온 위상과 대폭적인 투자에 비해 유럽 대항전에선 매번 죽을 쑤고 있는 팀 중 하나이다. 특히 2011-12시즌부터 꾸준히 진출하고 있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선 언제나 우승 후보로 불리고 있지만 2020-21시즌 준우승이 최고 성적일 정도로 매 시즌 체면을 구기고 있다. 본래 이러한 부진에는 챔피언스리그 경험 부족, 그리고 16강에서 유난히 FC 바르셀로나를 자주 만나는 대진 불운이 한 몫 했는데,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로는 잘 가다가 토너먼트에서 소위 '명장병'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술을 썼다가 경기를 그르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과르디올라는 현재까지 맨시티를 총 5시즌 동안 지휘하고 있는데 16강-8강-8강-8강-준우승에 머물렀으며, 맨시티를 꺾은 상대들도 순서대로 AS 모나코, 리버풀 FC, 토트넘 홋스퍼, 올랭피크 리옹, 첼시 FC로, 강호들이 많긴 하나 맨시티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다. 여러모로 맨시티와 시티즌들에게는 마음의 짐이 되고 있는 상황. 특히나 2010년대 구단 레전드인 뱅상 콩파니,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끝내 빅 이어를 들지 못하고 팀을 떠났기에 이는 더욱 시티즌들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출처 - manchester city

지금까지 만수르의 맨체스터의 여러 정보와 맨시티의 구단주,감독,선수명단,스폰서에 대해서 알아봤다.

 

다음에도 좀 더 유익한 정보를 찾아보며 맨시티 팀에 대한 프리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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